자기소개는 안 하련다.
주제가 심오한 것도 아니고 내가 나를 소개하라는데, 제일 어렵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어디서든 ‘무난히’ 살아남기 위해 보호색을 띤다.
빨간 사람들 곁에서는 발랄하게 빨간 옷을 입고,
검정 사람들 곁에서는 무색무취 검정 옷을 입는다.
나는 먼저 말을 꺼내는 법이 없다.
잔뜩 긴장한 채로 묻는다.
혹시 너는 어떤 사람이야?
어떤 옷을 입고 왔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나서야 허둥지둥 옷을 갈아입는다.
안심해. 나도 너랑 비슷한 사람이야.
이렇게 나는 매 시간 업데이트 되는 인간이다.
그 찰나의 순간이 날 대변할 수 있는가.
어떤 순간이 나인가.
내 안에 사는 100명 중 어떤 인간을 내보여야 할까.
정체성이 없는 게 내 정체성인가?
내 옷은 어디 갔지?
내가 태초의 나를 잃어버렸다.
뾰족한 취향이 없는,
까다롭게 가리는 것 없는, 소탈한 사람인 줄 알았다.
어쩌면 없었던 게 아니라,
아직 내 것이라고 오래 붙잡아 본 것이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내 땅을 찾지 못하고 산책만 하는 사람이 될까 봐 겁이 난다.
나도 잠시 앉고 싶은데
아무렇게나 말을 뱉을 수가 없다.
겨우 글자 몇 개로 함부로 나를 정의해버릴 수가 없다.
언젠가 내 옷을 찾을 수 있을까.
찾는다면 그때 가서 자기소개를 하겠다.
아직은 조금 더 서성거려도 괜찮지 않을까.